(이 리뷰는 90년대 초반 나온 순정만화잡지 댕기에 게재됐던 바람의 나라를 바탕으로 썼음을 먼저 밝힙니다.;;)

내님 오시네,/내님이 오시네.

허망한 세월/ 무심한 인세
서글픈 바램도/다 띄워 보내고

도솔천 머나먼 길로

어여쁜 내님/이제사/내게 오시네



고구려의 태자 무휼과 부여국의 공주 연은 정략적인 혼인을 하지만, 첫 만남에서부터
그들은 순수하고 영원에 가까운 애정을 갖게 된다.


무휼은 애초에는 따듯한 마음과 반듯한 성품을 동시에 가진 가장 이상적인 차기군주였다.
적어도 그의 영혼이자 심장이나 다름없던 연을 잃기 전까지는.

그리고 당시 다른작가는 흉내내지 못할 김진씨의 고퀄리티 칼라 원고가 이 작품의
아름다움에 빛을 더한다.


부여의 대소가 부리는 신수인 현무는 동명성왕 주몽이 세운 나라와 그의 혈족들을
멸망시키기 위해 호시탐탐 암습을 하고 음모를 꾸민다.


결국 연은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호동을 현무에게서 지키고 목숨을 잃는다.
당시 이 부분 연재를 접한 여학생들이 다들 여린가슴을 쥐어뜯었었지..ㅜ_ㅜ


바람의 나라는 아마도 김진씨 작품세계에서 가장 결정적인 위치를 가진 만화이자
우리나라 순정만화역사에서 가장 전설적인 작품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후 대중문화속에 일어나는 고구려붐에 큰 일조를 한 작품이기도 하고.
그만큼 참 개인적으로 할 말도 많은 작품인지라....하하 난감하여라;;;

이 만화의 내용은 역사적 사실을 기본으로 삼기 때문에, 그 비극적 결말을 이미 우리는 다 알고 작품을
읽기 시작한다. (한마디로 첨부터 가슴을 쥐어뜯을 준비를 하게 된달까.= =;;)
아버지보다 못한 자식이라는 컴플렉스를 가진 체 자신의 친자식들을 희생시키는 유리왕,
친자식을 죽게 만든 아버지의 전철을 절대 밟지 않겠다 다짐하지만 결국은 그 아비와 같은 죄를
짓고 마는 무휼, 그리고 아버지를 위해 사랑하는 여인을 희생시키는 호동.
그들은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결국 무거운 운명의 굴레에 희생되고 마는
고대 그리스 비극속 영웅의 닮은꼴이다. 그리고 그 비극은 대가인 김진씨의 손에서 더욱 깊고 짙어진다.

그리고 작품속 비극처럼 이 작품만큼 많은 부침을 겪은 작품도 드물듯. 그 중 결정적인 사건은
드라마 태왕사신기와 관련된 송사였지......훗, 말하자면 뼛속깊은 원한의 태왕사신기랄까. = =^
원작 팬으로서, 그 후에 나온 드라마 바람의 나라도 개인적으로 꽤 실망스러웠고.
-그런 극히 전형적인 영웅성장 히스토리물은 절대 나의 바람의 나라가 아니라고!!!ㅜㅜ
당시 김진씨가 이 작품은 사극이 아니라 심리드라마로서 봐달라고 언급했던 것 같다.(내 기억이 틀릴지도;;)
그 언급대로랄까....작품성은 높지만 포퓰러한 드라마로 재창작하기 녹녹치 않은 구조였단게 아마
이 작품으로선 비극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지 않았다면 태왕사신기 제작전에 이미 드라마로 만들어져서
작가나 작품이 상처를 입을일도 없었을텐데.

또 말하고 싶은건 김진씨 개인적인(원본원고분실이나 훼손등의)사정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근
나온 바람의 나라 리메이크본도 사실 실망스러웠다. 만화라는 것은 내용뿐 아니라 당시 그려진 작화에 의해
대중들의 뇌리에 새겨진 이미지란 것도 중요한 작품의 가치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리메이크보다 가급적 원본을 살릴 다른 방법을 찾아서 소장본을 내는 쪽이......불가능했나?;;


난 그냥 이 작품은 무휼과 연이의 슬픈 사랑이야기였다고 쭈욱 기억하고 있으련다.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