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사람 마음이 되었지만 이제는 안 되겠네. 저 친구가 짖는 소리를 들으면
내 마음은 또다시 늑대 마음이 되어 버린다네. 지금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에도
내 마음은 늑대가 되어 가고 있네. 조금 있으면 나는 늑대가 되어 버릴 것일세.
늑대가 되면 아마 자네를 습격하게 될걸세.'
'나느 늑대가 되네. 늑대가 되어 가고 있네. 장안량!나는 자네를 습격해야 하네.
자네는 나와 아내가 누구에게도 보여서는 안 되는 행위를 보아 버렸네.
늑대의 피가 그것을 용서 할 수 없다네. 장, 나는 늑대가 되어 자네를 습격할걸세.
나를 죽이게. 몸을 낮추지 말게. 몸을 낮추면 우리가 이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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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가 된 무장'은 일본의 역사소설의 대가 이노우에 야스시의 단편집
'누란'에 실린 단편 중 한 작품이다.
진나라 말기, 대장군 몽염은 자결을 하고 그 사실은 수하의 장수 중 하나였던 육침강
에게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준다. 몽염의 죽음으로 자신의 부대의 존재의미를
상실한 육침강은 부대와 함께 고국으로 귀환하기로 결심하고 길을 떠나던 중
가레족이라는 특수한 부족의 마을에 숙박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가레족 사람의 집에 묵게 된 육침강은 그곳에서 살고 있던 젊은 여인을
밤마다 범하게 된다. 한쪽은 단순한 욕정으로, 한쪽은 증오로 얽혔던 관계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의 감정은 미묘하게 바뀐다. 그리고 마침내 육침강을 사랑하게
된 가레족 여인은 6일째 되던 날 가레족 사람이 타지 사람과 7일간 관계를 하게 되면
관계를 한 이들은 늑대로 변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하며 떠날 것을 비통하게 권고한다.
하지만 부대와 함께 길을 떠나던 중 육침강은 마치 늑대울음소리처럼 들리는
그 여인의 통곡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부대를 남겨두고 다시 그 마을로 돌아가
여인과 함께 늑대로 변하는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다.
진나라가 멸망하고 한나라가 세워진 뒤, 육침강의 친구였던 장안량은 늑대가
되어버린 육침강과 재회하게 된다. 오래된 친우를 만나 감회에 젖은 육침강은
자신의 놀라운 사연을 친구에게 털어놓는다. 그 때 역시 같이 늑대가 된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육침강은 다시 늑대의 본성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는 결국 절친했던 옛 친우를 죽이게 된다.
이 작품은 소설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 중 하나이다. 소설속에는
인간 본성에 대한 회의주의가 대가의 솜씨로 진중하게 녹아들어가 있다.
감상적이지 않고 건조해 보이기까지 한 그 묘사가 오히려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가볍고 말랑한 소설과 글들만이 범람하는 요즘 독서계에선 보기 드문 작품이랄까....
(그렇다고 내가 가볍고 말랑한 소설을 싫어한다는 건 아니다;;)
이외에도 이 단편집에는 작가의 놓치기 힘든 단편들이 다수 실려있다.
내가 갖고있는 책은 1986년 판본이다. 아마도 현재는 절판된지 오래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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