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세상의 마지막 날 많은 재난과 화근들이 일어날 것임을 예견하고 <창조>의 첫날에
그러한 불행들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마술적인 문장 하나를 지었다.
신은 그것이 세상의 마지막 날을 준비하게 될 세대들의 손에 들어가고, 우연에 의해
침탈당하지 않도록 하는 장치를 덧붙여 놓은 채 그것을 썼다.
아무도 어디에 그것이 씌어 있고, 어떤 문자로 씌어 있는지 알지 못한다....
'너는 완전히 깨어난 게 아니라 조금 전의 꿈에서 깨어난 것이다.
이 꿈은 또 다른 꿈 속에 들어 있다. 그렇게 무한히, 마치 모래의 숫자처럼 꿈 또한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네가 되돌아가야 할 길은 끝이 없고, 그리고 너는 정말로 깨어나기 이전에 죽게 될 것이다'
=========================================================================================
아즈텍의 사제였던 치나깐은 스페인 침략군들에 의해 끔찍한 고문을 당한 뒤
거의 우물의 형태와 비슷한 지하감옥에 죽을때까지 갇히는 몸이 된다.
그리고 그의 몸은 참혹한 고문 끝에 평생 움직일 수 없게 망가진 상태다.
하지만 치나깐은 그 상태에서 세상의 끝에서 그 재난을 피할 수 있게끔
창조의 신이 만들어놓고 암호화시킨 신성한 문구에 대해 끊임없이 명상을 한다.
처음에는 세상의 피조물들의 모습을 끊임없이 떠올리다 -아즈텍인들이
호랑이라고 부르며 신성시했던-재규어의 문양에 그 실마리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치열한 명상 끝에 -마치 부처가 정각에 이르듯-그 문장이 뭔지를 알아차리게 된다.
그 문장을 입밖으로만 내면 그의 제국을 재건하고 스페인 정복자들을 없애버리고
세상을 바꾸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 그 자신이 창조의 신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치나깐은 죽게 될 때까지 그 문장을 입밖에 내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본래의 존재 자체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이 글은 보르헤스의 단편집 '알렙'에 실린 짧은 단편 중 하나이다. 그리고 내가 그나마
제대로 이해한 듯한 글중 하나랄까.....=_=
보르헤스는 남미 특유의 초현실적 경향과 인도-아시아 철학, 약간의 그노시즘 철학에
기반을 둔 환상적인 글을 많이 쓴 작가이다. 아시아 사상 특유의 시간과 공간의
경계의 모호성, 또한 그가 특히나 좋아한 장자의 호접몽 설화의 흔적이 이 글에도 언뜻 보인다.
-덕분에 보르헤스의 글들은 대부분 상당히 어렵다.=_=
그리고 시간과 우주의 위대성을 결국은 이겨내지 못하는 주인공이라던지....
하지만 이 인물들의 비극적이면서도 치열하게 투쟁하는 운명에 결국 우리는 감동하게 되는 것이리라.
'잡다한 리뷰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뷰]로저 젤라즈니-별을 쫓는 자 (0) | 2009.10.15 |
---|---|
[나름 책 리뷰]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상 (0) | 2009.08.13 |
이노우에 야스시-늑대가 된 무장 (2) | 2008.04.09 |
요즘 읽는 책들 (5) | 2008.03.31 |
알베르 카뮈-시지프의 신화 중에서 (4) | 2007.10.10 |
최근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