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발행. (아마도)신국판.

격주간 만화잡지 윙크에 게재됐던 작가의 단편모음집이다.

요즘의 작가님의 행보를 생각하면 정말 상상도 안될 퓨어한(;;)단편들이 수록돼 있다.



권두작은 수트라. 고대 유적지를 탐사하던 여주인공이 타임슬립을 한다. 그리고 자신을 필생의 반려라

말하는 아름다운 외모의 청년을 만나게 되는데....

정성이 가득한 작화에 사랑스러운 스토리로, 당시 신인작가였던 박무직씨를 크게 알리게 된 작품이다.


LTU(Love that universe)

미생물학자인 여주인공 시타는 애인인 라마가 260년이라는 긴 시간의 우주탐사를 떠난 뒤 그를 그리며 우주와 자신이 얼마나 깊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차츰 깨달아간다. sf순정만화의 새 지평을 열(뻔했)었던 작품.

-그 이유는 아마도 작품에 남성적인 감성이 많이 들어가 있었던 탓인 듯 하다.-


전설의 밤.


상인의 아들인 주인공은 어린 시절 하늘 꼭대기에 앉아 영원히 별을 팔아야만 하는 저주에 걸린

한 마녀를 만난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저주를 풀어주기 위해 평생을 헌신하게 된다.

간결한 스토리면서도 읽는 이의 감성을 건드리는 매우 아름다웠던 작품.


미미르.


왕국의 어린 공주인 이루릴은 시녀들의 말만 듣고 아버지때문에 어머니가 일찍 죽었다는 오해를 하고

상처를 받는다. 왕은 소년기사인 아트레이트를 시켜 공주를 현자에게 보내는데..

당시로서는 상당히 실험적인 작화기법이 많이 동원된, 사랑스럽고 아기자기한 스토리가 돋보이는 작가의 노작이다.


음...........90년대 후반-이천년대 초반에 걸쳐 한국 만화계에 제일 많은 파문을 일으켰던 작가님이 바로 박무직씨일 것이다. 나야 그 어둡고 골치 아픈 사정에 대해선 별반 아는 바가 없고, 내가 이제껏 봐 왔던 작가님의 작품이력에 대해서만 코멘트하려고 한다.

박무직씨는 순정만화잡지를 통해 만화작가로 데뷔를 했고, 이력의 초창기에는 본인의 정체성을 순정만화작가라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빼어난 작화실력에 탄탄한 스토리 감각, 그와 더불어 너무 많은 열정을 가졌던 게 문제였을까....그는 만화계쪽의 많은 사람들과 알력을 갖게 되면서 한국에서의 만화 이력마저 꽉 막히게 된다.


사실 그 분의 인성에 대해서야 의견이 분분하지만 일면식도 없는 분이니 내가 전혀 아는 바는 없고....당시 그의 만화작업에서 문제로 보였던 건 절대 순정만화가가 될 수 있는 분이 아닌데 본인은 순정만화가라 주장했다는 점인 듯 하다.

연령대 불문하고 대체적으로 여성들은 섹스와 관련된 담론에 관해 결벽한 속성을 갖고 있다. 개중에 섹스에 호기심이 아주 왕성하고 개방적인 여자들도 있지만, 같은 여자로서 전체 퍼센테이지에서 이런 사람은 정말 소수라고 단언할 수 있다. 특히나 여성이 남성의 관음의 대상이 되는 섹스에 관심이 있는 여자들이 그 중에 얼마 될 리도 없다.

박무직씨의 초기작을 보면 작화에서 당시 인기 소년만화였던 카츠라 마사카즈의 전영소녀의 영향을 물씬 받았음이 은연중에 느껴진다.-순정만화를 그리는 작가가 그림에서 전영소녀의 영향을 받았다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전영소녀라는 만화는 여성독자들이 싫어할만한 온갖 키워드를 모조리 집어넣은 작품이었고, 그림의 영향을 받을 정도로 그 만화를 열심히 봤다는 얘기니까.

 그리고 초반에는 은폐돼있던 그의 성향이 점점 작품이력이 길어지면서 여성들이 꺼리는 남성적 정서나 섹스에 대한 남성적 시각이 드러나게 되고, 처음에는 그의 작품을 지지했던 여성독자들이 그의 작품에서 차츰 불편함을 느끼게 됐던 것이다. 어차피 박무직씨는 얼마전까지 일본에서 성인만화를 그렸다고 하니, 결국엔 필연대로 흘러간건지도 모르겠다. 


박무직씨의 초기작 모음인 하늘속 파람 별은 수록된 작품의 면면이 참 아름답고, 정말 아까운 책이다. 그리고 그의 한국에서의 만화 이력을 따라 비슷한 시기에 한국의 출판만화의 전성기도 같이 끝나버렸다는 생각을 하니 정말 씁쓸한 마음만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