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김진님의 단편모음. 1999년 시공사 발행. (요즘 상당히 말이 많지 이곳....=_=)

책 뒤쪽을 보면 인지로 추정되는 종이가 붙어있다. 우리나라 만화단행본은 대부분

매절계약을 맺고 발행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출판사측에서 김진씨를 상당히 예우해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 단편은 별이 총총 빛나는 밤. 천문관측을 좋아하는 평범한 소녀의 달콤쌉싸름한

첫사랑 이야기다. 김진씨의 다른 작품답지 않게 순정학원물의 클리셰를 쫓아서 플롯이 차근히 

진행되기 때문에 스토리상 편하고 안정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한편으로는 이 나이 먹은 내가 보기

에도 작품의 전개나 정서가 좀 올드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림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말이지.


 바람과 노래하기. 부모를 잃은 다섯남매가 때론 투닥투닥도 하며 토닥토닥 살아가는 이야기다. 

작품에 대한 코멘트는....으음.............- -;; 김진씨의 초기대표작인 '레모네이드처럼',

'모카커피 마시기'와 연계되는 작품이라는 듯 하다. 난 그 작품들은 못봐서 말이지...



제목은 시벨. 이 작품이 실렸다는 사실을 알고 책을 구매했더니 이 단편만 가장 마음에

들더라는 그런 난감한 사태가....- -;;;

이태리를 배경으로 허언증환자에 소시오패스적 마인드의(;;)미소녀 시벨과, 그 소녀에게

모든 마음과 영혼까지 빼앗긴 고아소년 제미니의 슬픈 짝사랑 이야기다. 마지막 부분

영원히 눈을 감은 제미니의 화상 위로 떠오르는 쓸쓸한 나레이션은 독자의 눈물을

울컥하게 만든다.

지금 생각하면 매번 그리시는 작품이 꽤 묵직하고 난해한 김진씨가 이렇게 투명하고 예쁜 

감성의 작품을 만드실 때도 있었다니 놀랍다는 기분마저 든다능.



16시 36분. 평범한 여고생 근혜와 훈남 선도부 부장님의 상큼짜릿한 풋사랑 이야기...가 

좌충우돌 펼쳐진다.

앞서 소개한 이 작품집에 실린 김진님의 학원물 단편인 '별이총총'보다 이 작품이 훨씬

깔끔하고 재기발랄한 느낌이다. 6년여간의 간극은 작가의 감수성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는

걸까? ㅠㅠ


비록 모든 작품이 다 내 마음에 찬 건 아니었지만, '별이 총총한 밤'은 필모그래피상 묵직한 장편을 

주로 그렸던 김진씨가 잠깐이나마 정말 만화적 감성으로 그렸던 작품들을 엿볼 수 있는, 참 좋은 

기획의 단편집이다. 앞으로도 김진씨는 이런 작품을 그리시지도, 그리실 수 있지도 않을테니까.


그리고 전두환 일가가 거의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있는 이 시점에, 시공사의 운명은 앞으로

어찌 되려나 새삼 궁금해지기도 한다. 시공사에서 참 괜찮은 만화책이 많이 나왔더랬는데

흠.....꽤 마음이 복잡해지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