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중반.....(쯤?)격주간지 이슈에 게재됐던 이강주씨의 단편만화.


우연한 사고로 사람들이 소소하게 느끼는 감정과 미각을 잃은 주인공은 요리사의 길로 들어선다.


하지만 그의 요리에 인간으로서의 따듯한 감정이 들어있지 않다고 스승이 질타한다.


어느날 주인공은 자살을 하려던 여자를 구해주고, 그녀에게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는다.

그리고 여자의 제안으로 그들은 ㅅ...ㅔ.....ㅅ........를 하...........하고.(세세세...라던가,

세수.....라던가)

그리고 그녀와의 몸의 교감........으로 주인공은 잃어버렸던 풍요롭고 따듯한 감정을 되찾는다.

풍성한 감정이 담긴 그의 요리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준 그녀를 기다리게 되는데....


이강주씨의 이력은 팔십년대 말 월간 르네상스에서의 공모전 입상에서 시작됐던 걸로 기억한다.

다른 순정만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당시 일본의 순정만화의 작화에서 그림체의 영향을 받았음이

때때로 느껴지기는 했지만, 또한 순정만화계에서 이강주씨만한 작화실력을 가진 만화가는

없었다. (지금까지도 이강주씨 만큼 완벽하고 깔끔하게 떨어지는 그림을 그리는 만화가는 한국에

없을거라고 생각된다.)


'녹차향 아침'은 90년대 중반경의 문화 흐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왕가위 이안 감독으로 대변되는

홍콩 영화)가 많이 반영된 단편이지만, 내러티브가 이해가 쉽고 전형적이라 깔끔하고 (이강주씨 

작품중에 비교적) 대중적이다. 

문화라는 건 돈의 흐름에 많이 좌우되는 분야이기 때문에, 우리 경제가 좀 더 풍요롭고 희망적이었던 

90년대에 만화계에도 세련되고 참신한 시도의 작품들이 많았다. 아마 이강주씨도 그런 시류가 아니

었다면 나오기 힘든 작가님이 아니었을까....싶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휩쓸던 당시 문화계 풍조 

때문이었을까, 이강주씨의 작품도 대부분 비정형적인 내러티브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세련되고, 달리 말하면 만화로서의 대중성이 떨어지고....우리나라 경제가 점점 어려워지

면서 아마 이강주씨 작품의 이런 경향이 그 이후의 그의 이력에 악영향을 끼쳤을거라고 생각된다.

우리나라 만화계, 그리고 문화계는 엔터테이너를 원하지 더이상 예술가는 원하지 않게 된 것이다.

-출판만화계를 독점한 몇몇 잡지사의 횡포도 '참 괜찮은'작가들이 만화계에서 떨어져나가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 같지만.


하지만 다양한 작품성향을 포용하는 풍성한 토양에서만이 진격의 거인 같은 과거에는 볼 수 없던

폭발력있는 작품이 나올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놈의 나라에선 왜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할 생각은 

안하고 과실을 쏙쏙 빼먹을 궁리만 하는 것인지....내 냉소주의는 이렇게 나날이 내공을 더해가는구나.



덧)이 작품은 더이상 단행본이 안 나오고 도판도 구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블로그내에 스캔이미지를

많이 삽입했습니다. 나중에라도 저작권상 문제가 된다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미지들은 전부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 제가 직접 스캔했습니다.